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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내가 왜 ‘쓰는 일'에 꽂혔는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나도 한때는 글 쓰는 업을 가지려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다. 태초에 세상이 있고 그 안을 아직 덜 깎인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던 사춘기 소년이 있었다. 여러모로 불우하고 불운한 환경 탓에 소년은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10대 시절을 보내야 했고, 그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로 인적 없는 축사 가설 건물에 갇혀 살며 소설과 음악에 빠져 살았다. 이 축사라는 표현은 은유 같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소를 가둬 기르는 곳에 조립식 주택을 이어붙인 모양이었다. 시내까지는 한 시간을 넘게 걸어야 했고, 근처에 이웃이라곤 낮 종일 소음을 쏟아내는 고철상(혹은 그 비슷한 업종) 사무실 하나 뿐이었다. 그 집의 채널이 몇 개 나오지 않는 텔레비전은 ..
투쟁을 넘어 젊은 노조원이 홀로 쿠팡 물류센터 앞에서 시위하는 것을 보았다. 노조와 시위라는 조합에 어울리지 않게 분위기는 평화로웠고, 놀랄만큼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근무환경은 썩 나쁘지 않았다. 언성을 높여가며 일용직의 자존감을 짓밟는 관리자도 없었고, 노동강도는 쉬엄쉬엄 산책하는 수준이다. 성수기에나 드문드문 있는 잔업은 겨우 30분에 불과했다. 그만큼 급여는 적지만, 이미 급여 수준을 알고 제발로 걸어들어온 사람들이니 불만이 있을 여지가 없다. 그럭저럭 사는 데 이만한 직장이 있을까 싶다. 그걸 아는 건지 노조는 크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다른 센터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를 조근조근 읊을 뿐이었다. 80년대 운동권을 연상시키는 전투적인 노래가 적절한 음량으로 흘러나왔다. 마찰이나 갈등..
내 사랑 남녀관계와 친구 사이, 즉 사랑과 우정을 철저히 분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늘 누군가 자신을 욕망하기를 원한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고, 비난하려고 서두로 꺼내든 것도 아니다. 내 경우와 너무 달라서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편안하고 끈끈한 정을 선호한다. 그래서 연인과 사이가 깊어지면 얼마간의 의리와 우정을 요구하는데, 이에 질색하는 여자들이 많다. 반대로 설레임에 중독되어 수시로 연인을 갈아치우는 사람을 보면 나는 눈앞이 아찔해져 마음의 안전거리를 500킬로미터 이상 확보한다. 먼 나라 이야기로 취급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위의 뷔폐식 찍먹 연애는 극단적인 예시다. 대다수 사람들의 사랑은 애틋함과 설레임 어느 한 지점에 머무르고 있다.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부부관계가 오래..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망상 많은 사람들이 기대 혹은 우려하는 바와 달리 현재 챗gpt, dall·E 같은 생성형 AI들은 아직 '지능'이라 불리기엔 갈 길이 멀다.다만 대중이 놀라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업데이트의 속도가 말이 안 된다. 불과 한두 해 전까지 AI그림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척도였던 '손가락의 부자연스러움'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원래도 놀라운 수준이었던 자연어 텍스트 역시 기계가 썼는지 구분해낼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이러한 디테일은 생성형 AI의 기계적인 시행착오가 쌓인 결과다.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한다.그러나 감정이 없는 기계는 말그대로 기계적 시행착오를 무수히 반복해 오류를 줄여나간다. 잠도 안 자고 연산속도도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니 기계는 순식간에 숙련된 작가이자 화가로 거듭났다. 거기까지 걸..
공포의 묘지 Pet Sematary 2019 리뷰 한국 제목은 배급사의 횡포다. 원제는 애완동물 공동묘지이고, 번역된 소설도 같은 제목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원작자의 인지도가 낮다고 생각했는지 배급사는 과감하게 그들의 센스를 가득 담은 제목으로 홀랑 바꿔먹었고, 포스터에다 존나 진지한 폰트로 새빨갛게 '아빠, 왜 나를 살렸어...?'라고 박아넣는다. 이런 작은 센스 하나하나에 호러 팬들의 억장이 무너집니다. 저 제목으로 개봉되었으니 이 영화는 이제 한국에서 영원히 '공포의 묘지'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얼굴도 반반하니 잘 생겼고, 키도 훤칠하고 머리도 좋고 성격도 원만한 친구가 있다고 하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데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못된 상사가 그에게 '된똥따개'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어려운 일을 척척 해결해서 변비 뚫리듯 시원..
에일리언 ALIEN(1979) 어린 시절, 모두의 가슴 속에 영롱히 반짝이던 괴물이 있었다. 정식 한글표기가 알려지기 전까지 그것은 에어리언, 에얼리언, 에어조던, 에이리언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지옥불이 슬금슬금 점화되던 시기, 대한민국엔 괴이하게도 2편이 먼저 상영되고 흥행에 성공하자 1편에다가 2편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개봉하는 개판이 벌어졌다. 막무가내 아재 센스가 문화를 점령했던 시대였으니...어쨌든 이런 이유로 1편인것처럼 개봉된 2편에서의 쿵쾅쾅 액션에 취한 한국 관객들은 2편인 것처럼 뒤늦게 개봉한 1편의 섬뜩한 지루함에 악평을 쏟아냈으며,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에일리언 하면 2편을 대표 이미지로 떠올린다. 카메론찡... 그도 그럴게 1편에 에일리언 꼴랑 한 마리 나오는데 비해 2편에서는 떼거지로 물량공세하는 걸 우..
나이트메어 A nightmare on elm street (1984) 지난 8월 말일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타계하면서 언젠가 웨스 크레이븐 특집으로 포스팅을 해 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한 뒤 하루 1포스팅이라는 애초의 목표도 헐렁헐렁해져 이만치 미뤄졌다. 스크림, 나이트메어, 힐즈 아이즈 등 수많은 호러 프렌차이즈를 창조해낸 호러계의 스필버그. 정작 본인은 호러 장르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은근히 떡밥 뿌리면서도 막상 호러 외에 다른 장르에서는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한 비운의 감독. 호러의, 호러에 의한, 호러를 위한 웨스 크레이븐의 대표작 '엘름가의 악몽'을 살펴보자. 이미 몇 편의 호러 영화를 성공시킨 젊은 시절 크레이븐 아저씨. 그러나 야심작 우뢰매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빚더미에 앉게 된다. 심기일전하여 본인의 트라우마와 스크랩해왔던 신문기사 내용들을 창조적..
이블데드 evil dead(1981) 르네쌍쓰 픽쳐쓰에서 자랑스럽게 소개합미다 그냥 이블데드도 아닌, 더 이블 데드 그도 그럴 것이 가면 갈수록 더더욱 이블 데드 저예산으로 제작되어 제작비의 240배 이상의 흥행수익을 쌍끌이로 걷어 모으며 샘 레이미를 일약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올려다 놓은 효자영화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도 뒷얘기가 있다. 장편 찍기 전에 영화의 모태가 된 30분 짜리 후잡한 단편영화를 동네 술집 위주로 상영하다가 그 동네 극장주가 보고 "예쓰 굿 돈의 이 기운" 대박을 예감하고 투자해서 만들어졌다고. 앞선 단편에 비해 월등한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그래도 예산의 한계와 배우들의 괴이한 연기력이 눈에 띈다. 그러나 영화 자체의 재미와 더불어 원체 호러 영화하면 빠지지 않는 유명세까지 버무려져 자잘한 단점이나 어색한 장면들조차 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