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1) 썸네일형 리스트형 호프 감상문(스포 있음) 오랜만에 영화관에 다녀왔다.재밌었다.다음 주 주말 쯤에 한번 더 보고, 속편이 나오면 또 볼 거 같다.는 감상을 살살 품고 집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열렬한 호프미워죽어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사실 그들이 호프에 실망한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감독이 다름아닌 나홍진 아닌가. 다음은 나무위키에 적힌 호프(영화)/평가 페이지의 일부분이다."반면 관객 평은 그야말로 극과 극으로 갈리는데, 호평하는 쪽이든 혹평하는 쪽이든 공통적으로 "내가 뭘 본 거지?"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관람객들의 호들갑들을 보면 곡성 때와 같은 광기와 혼돈과 아리송함과 그래서 누가! 누군데! 이런 센세이션이 펼쳐질 것 같다.하지만 나홍진 감독 필모를 보면 그런 영화는 곡성 하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추격자와 황해를 얼마나.. 인터넷 유모어의 과거와 현재 내가 본격적으로 인터-그물망 온라인 세계를 살살 유영해온 것이 어언 20년이 넘어가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반 친구의 강권으로 목격한 노랑국물의 충격과 공포로부터 헤아리자면 약 26년이다. 그 시절은 이미 초고속 adsl의 보급이 전국을 뒤덮어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심연의 아가리에 퐁당 다이빙해 진귀하고 혐오스러운 것들을 마음껏 관람할 수 있었다. 지금은 금지된 콘텐츠들을 접하는 데 필요한 건 vpn이나 토르 브라우저가 아니라 그저 우연한 계기 뿐이었다. 오타나 클릭 미스, 교실에서 야동 트는 미친 친구 같은.태어나서 경험해본 적 없는 포르노의 홍수를 10대 초반에 겪게 된 것이다. 사실 그 시절 콘텐츠 중 적어도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포르노는 상대적으로 건설적인 편이었다. 실제로 포르노가 인터넷 .. 십여 년, 다시 일 년. 시작은 나의 예상이나 계획과 많이 어긋나 있었다.살아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도록 작은 것들은 바싹 야위어 털실보다 조금 두꺼운 갈빗대를 앙상히 드러내 보였다.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20대는 모질지 못한 나이다. 굶주림과 공포에 지쳐 잠든 그것들을 받아 품고 멍하니 바라보다 술에 취해 잠들었다.온갖 더러운 것들을 맨손으로 치워야 했다. 홀로 배변하지 못해 장 마사지를 하고 똥을 짜냈다.잠든 동거인의 배 위에 오줌을 싸지르기도 하고, 나 몰래 홀로 산책을 나섰다가 겁에 질려 달아나느라 몇날 며칠 가슴을 졸이게도 했다.그렇게 십여 년 가족이 되었다.한 녀석이 죽었다. 놈이 병들어 앓은 한 달 동안 나는 이사 준비로 일에 치여 알아차리지 못했다.그 사이 네 다리가 야위고 코와 귀가 누렇게 떠 버렸다.의사는 .. 2026. 03. 25 포기하면 편하다더니 어떤 포기는 집착보다 괴롭다. 이렇게 애매하게 포기하지 못하는 상태를 두고 인터넷에서 누군가 '가능성에 중독된 상태'라 단언한 것을 본 적이 있다.주로는 음악, 연기 등의 예능계열에서 이렇다할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채 취업적령기를 놓쳐버린 가련한 이들을 한번 더 때리는 용도의 프레임이다. 노력과 고생이 인정받는 건 결과를 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지난 2월 내내 나는 웹소설을 한번 써보겠다고 밤낮으로 고군분투했다. 낮에는 주 5~6일 하루 3~4시간의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새벽까지 글을 읽고 썼다. 그렇게 17편 정도를 썼을 때 연재를 시작했고, 일일 조회수 0~5라는 현실 앞에 간단히 무너졌다.아주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일반 연재로 승격할 수 있는 분량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무래도 이렇게 불발로.. 2026. 03. 23 카페 이어폰의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들어오는 배경음악에는 종종 십여 년쯤은 철이 지난 발라드가 섞여 있었다. 마흔 살 전후의 세대들이라면 강제로 청춘의 한 단면이 건져올려질만큼 유명한 가수의 유명한 노래들이었다. 그러나 노래와 젊음이 한창이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나는 줄곧 한국식의 두꺼운 발라드를 싫어했다. 고작 사랑을 잃었다고 죽을 듯이 오열하고 울부짖는 가사와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실소가 터져나오고 만다. 참 사랑에 환장들을 하던 시절이 있었구나, 아저씨 특유의 자기중심적인 회상을 잠깐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추억과는 거리가 멀다. 십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노이즈로 들리는 것을 보면 이십여 년 뒤에도 나는 항상 남을 못마땅해하는 철없는 어른이겠거니 하는 즐거운 상상이 뒤를 잇는다. 상상은 확실히 회상보다 .. 운동를 하여보아와요 친구는 말했다. 형 그렇게 살다 뒤져.그는 오랜 쇠질로 단련된 육체를 묘한 두께의 지방층으로 수줍게 가리고 있었다. 그는 기왕 다시 운동을 시작하는 김에, 나를 꼬드겨 외롭고 적적한 무쇠의 길을 까르륵 웃음소리 가득한 사교모임으로 가꿔보려 한 듯싶다.충동적이고 발작적이었던 몇 개월의 맨몸운동 외에 아무런 운동경력이 없는 나는 오랫동안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다 실직 후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한 달여 누워 살다시피 한 끝에,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이렇게 살다 진짜 뒤지겠구나.나는 술을 끊었다. 아주는 아니고 평일은 완전금주, 주말은 약속이 없으면 금주했다. 원천적으로 혼술을 차단하자 체력이 수직상승했다.자신감이 오르고 귀가 얇아졌다. 까짓것 쇠 한번 들어보자 싶었다.친구.. 밤인지 새벽인지 퇴근길, 집 근처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일용직 현장의 일이 늦어졌다. 나는 잔업을 하지 못했고, 다음 공정에서 일이 마무리되기까지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그 동안 나는 그 현장에서 쓸모 없는 사람이었다.하염없이 셔틀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지층의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웠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졸음이 쏟아졌으나, 몸을 앉힐 곳이 여의치 않았다. 비틀거리며 물류창고 5층 통로에 서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오랫동안 들어야 했다.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지하철 계단이 작동을 안 해요."낯선 노인은 담배를 태우는 내게 어눌한 발음으로 말을 걸어왔다.나는 그 말뜻을 헤아리기 위해 두어 번 되물은 뒤, '작동을 멈춘 계단'이 에스컬레이터라는 것을 .. 볶음밥과 노스텔지아. 그리고 안드로이드 본디 가정에서 볶음밥이란 애매하게 남은 식재료를 에라 모르겠다 일단 칼로 조사놓고 후드리찹챱 볶아서 식은 밥 때려넣고 왼손의 스냅을 적극 활용해서 불맛을 불불 입혀 한 끼 또는 하루의 끼니를 해결하는, 주부의 지혜가 살살 녹아 있는 그런 음식이었다.식은 볶음밥을 전자레인지에 대충 댑혀서 계란 후라이 한 장 얹어 내놓으면 아귀에 빙의된 아기들은 수저를 흉기 삼아 밥그릇을 온통 난도질을 해놓는다. 종종 거기 추가되는 케첩의 붉은 빛깔 덕분에 그러한 식사는 몹시 포악하고 야성적으로 보이기 일쑤였다.같은 맥락이지만 그 대상이 재료가 아니라 반찬인 비빔밥의 경우에도 그 붉은 빛깔이 한국인의 야성을 길러왔다는 건 논란의 여지 없이 주지된 사실이다. 이는 고구려 고분의 벽화 수박도에 명시된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이..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