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호아

공포의 묘지 Pet Sematary 2019 리뷰

반응형

한국 제목은 배급사의 횡포다. 

포스터 문구들 상태 봐라.

 

원제는 애완동물 공동묘지이고, 번역된 소설도 같은 제목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원작자의 인지도가 낮다고 생각했는지 배급사는 과감하게 그들의 센스를 가득 담은 제목으로 홀랑 바꿔먹었고, 포스터에다 존나 진지한 폰트로 새빨갛게 '아빠, 왜 나를 살렸어...?'라고 박아넣는다.

 

이런 작은 센스 하나하나에 호러 팬들의 억장이 무너집니다. 저 제목으로 개봉되었으니 이 영화는 이제 한국에서 영원히 '공포의 묘지'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얼굴도 반반하니 잘 생겼고, 키도 훤칠하고 머리도 좋고 성격도 원만한 친구가 있다고 하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데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못된 상사가 그에게 '된똥따개'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어려운 일을 척척 해결해서 변비 뚫리듯 시원하다는게 그 원인이다. 회사의 모두가 그를 치켜세우며 멀쩡한 이름 놔두고 똥따개라고 불러준다. 친구 된 입장에서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베프가 하루 종일, 어쩌면 영원히 된똥따개로 불려야 한다면 복장이 터지게 마련이다.

원작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이 제목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틀린 제목은 아니다. 공포 영화이고, 그 공포의 근원이 묘지에 있으니까. 그러나 맞는 말이라고 항상 옳은 말인 건 아니다. 고전 취급받는 영화 '샤이닝'을 '공포의 호텔'이라고 바꿔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센스 없음으로 인해 조기 탈모가 올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작명센스로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아르헨티나 영화 '공포의 침입자'가 있다. 이 영화 또한 그 내용은 의외로 봐줄만해서 제목이 모든 걸 망쳐놓은 케이스이다. 이런 관객반응을 의식했는지 네이버에는 나이트 테러로 등록되어 있다. 나름대로 머리를 쓴 모양이지만 그 또한 좋은 센스로 봐주기는 어렵다. 차라리 '어둠 속의 대머리들'이라고 짓는 건 어땠을까. 실제로 다른 차원의 대머리들이 습격해오는 내용이니까.

죽음을 뿌리치고 되살아난 공포의 고양이

 

제목 얘기는 여기까지 하자. 어차피 이 제목을 지은 사람은 여러 사람의 울화를 원격으로 받아 얼마 남지 않은 모근이 힘을 잃을 것이고, 머지 않아 마지막 잎새를 떨굴 것이다. 그 정도면 죗값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영화는 전형적인 웰메이드 공포영화의 흐름을 따라간다. 회상씬은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적절하게=무섭게 보여주었고 최근 영미권에서 유행하는 뒤죽박죽 시간 비벼섞기는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이 회상을 정말로, 정말로 혐오하고 증오하는데, 작가가 더 이야기를 진행시킬 여력이 없을 때 임시방편으로 이미 지나간 일들을 구태의연하게 설명하며 분량을 때우는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적절하게 활용된 회상 장면은 짜증이 덜한 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에 독버섯처럼 자라난 수준 이하 영화와 드라마들이 보여준 무분별한 회상과 시간 뒤섞기는 괜찮은 작품들을 뒤로 한 채 내가 구독을 끊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래서였을까, 서순을 따라 정직하게 플롯을 진행해나가는 이 기본에 충실한 모습이 나는 굉장히 믿음직스러웠다. 결말이 다소 힘빠지기는 했지만 타당성은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쉽고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깜놀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보다는 차분하고 꾸준하게 긴장을 쌓아올리는 방법을 택했는데, 이 과정이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보이기는 했다. 익숙한 장르적 순서를 정석으로 따르니 확실히 어느 정도의 수준은 보장되었지만, 그만큼 의외성이나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었다. 원작의 분위기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깽판을 최대한 자제한 것 같다. 

나무위키 기준 러닝타임은 101분으로, 앞뒤 꼬리 자르고 본편 내용은 90분 내외일 것이다. 역시나 적은 분량인데, 조금 더 뻗어나갈 플롯의 가지들이 보여 아깝기는 했다. 웬디고의 설화, 끔찍한 외양과 달리 선의로 주인공 가족들에게 경고를 하는 유령, 레이첼의 죽은 언니가 보여준 소름끼치는 장면들(사실 별 비중도 없는 이 여자가 제일 무섭다)을 가지고 좀더 유의미한 서브플롯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못되게 말하자면 훨씬 매력적일 수 있는 캐릭터들이 낭비된 느낌이다. 3시간 짜리 영화도 보란듯이 흥행하는 시대인데, 좀더 야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봐도 좋지 않았을까.

원작자 스티븐 킹은 소설을 쓸 때 결말을 정해두지 않는다고 한다. 먼저 인물들의 이러저러한 성격과 상황 등을 만들어 놓고 그들 사이에 사건을 던져놓는 것이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인물들은 분투하고 아우성치고 몸서리를 친다. 어떤 인물은 위기를 벗어나고 어떤 인물은 공포와 절망 속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모든 결말은 작가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에게 달려 있다. 이렇게 킹의 작법은 관찰과 사고실험에 가깝다. 

반면 영화가 보여주는 플롯은 정해진 결말을 따라 정해진 사건이 차곡차곡 진행되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레이첼의 죄책감과 언니의 유령이 저주받은 땅에서 어떤 작용을 할지 궁금했으나 그들은 그냥 분위기를 더하기 위한 소모품처럼 사용되었다. 영화 초반 사고로 죽은 학생 유령은 고전적인 과묵함으로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 뿐이었다.

주드 할배의 비장한 죽음은 마음에 들었다. 이처럼 메인 플롯은 만족스럽게 연출된다. 개인적으로 그 곁가지들이 아쉬울 따름이다.

초반에 동물의 사체를 묻으러 가는 아이들. 얘네들의 정체와 가면에 대한 이야기도 더 해줬으면 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그것 2'가 아싸리 최소한의 플롯으로 2시간 반에 가까운 대환장 깜놀 파티를 만들어버린 것과 완전히 대조된다. '그것 2'는 전작과 완전히 다른 전략으로 야심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좀 과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닥터 슬립' 또한 차분하긴 하지만 좀더 세계관을 확장시켜 샤이닝 능력자들의 3대를 완성하며 전작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런 비장의 한 수가 아쉬웠던 영화가 공포의...애완동물 공동묘지이다.

 

아무튼 같은 원작자의 소설들이 이렇게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개봉되는 건 팬들 입장에서는 뿅가 죽는 일이다. 킹! 더 호러 갓! 

 

반응형

'영호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일리언 ALIEN(1979)  (3) 2016.03.27
나이트메어 A nightmare on elm street (1984)  (4) 2015.11.09
이블데드 evil dead(1981)  (8) 2015.10.25
괴물(The Thing, 1982)  (4) 2015.09.23
엑소시스트(1973)  (9) 2015.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