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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아

오멘(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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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아이를 잃은 산모와 어머니를 잃은 신생아가 있다.


주께서 당신께 아이를 내려주신 겁니다. 

신부의 설득 끝에 아내 몰래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아저씨.



자식의 죽음을 모르는 아내는 행복한 앞날을 꿈꾼다.


몇 해가 지나 영국의 대사가 된 주인공 아재. 알고보니 정치계의 거물이었다.



아! 내가 금수저다!




죽순 마냥 쑥쑥 자라나는 데미안. 성대한 생ㅇ리 파티가 열린다.




뜬금없이 데미안을 위한 거라며 자살하는 보모





애놈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보모의 죽음으로 뒤숭숭해진 주인공의 사무실에 신부님 하나가 찾아온다.




?




하나님을 영접하시오...그래야 살 수 있소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으앟ㅎ앙앙ㅇㄱ강악!





느닷없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쩝쩝거리던 신부는 경비에게 끌려나간다.





끌려나오는 신부를 불러세워 사진을 찍는 기자.






현상해보니 신부의 어깨 뒤로 이상한 작대기 같은 게 찍혔다.





이기 무신 일이여





알고보니 신부가 찍힌 모든 사진에 나타난 형상





한편 주인공의 으리으리한 집에는 죽은 보모를 대신할 새로운 인력이 투입된다.

다짜고짜 데미안을 만나고 싶다는 아지매.



누꼬




용사님을 지키러 왔습니다




올ㅋ

관우를 얻은 조조의 심정으로 데미안은 슬금슬금 악마성을 드러내며 부모를 위협한다.



앞서 포스팅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저예산으로 완성된 독립영화였다면 오멘은 헐리웃을 등에 업고 제작비를 아끼지 않으며 만들어진 본격 상업영화이다(제작비는 거의 30배 차이). 우리나라에선 70년대 개봉 이후 90년대에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유행하면서 다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비밀스런 악마숭배집단이 반인륜적인 음모를 꾸민다는 점에서 '악마의 씨'의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이 입양한 자식(적그리스도로 추정되는)의 출생의 비밀을 파헤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보인다. 그러나 악마의 씨에서 로즈마리가 단순히 스스로를 향한 형체 없는 위협에서 발버둥치고 있다면 오멘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이 잔혹한 죽음을 맞이하며 상황을 급변시킨다. 



교회 앞에서 자지러지는 악마 새끼.


하긴 누구라도 억지로 교회에 끌려가면 저런 반응이지 않을까



나무 위키에 사이코 스릴러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글이 있지만 나는 부정적이다. 문제는 영화의 시점에 있다. 오멘의 스크린은 등장인물의 인격이 개입되지 않은 3인칭의 위치에서 상황을 보여준다. 즉, 영화적 사실이 아닌 장면은 보여주지 않는다. 피뢰침에 관통당해 죽기까지 신부의 죽음을 끊임없이 암시하는 물적 증거가 어떻게 우연일 수 있겠는가? 계속되는 죽음에 초현실적인 사악한 의지가 작용한다는 암시와 증거들은 영화 곳곳에 있다. 


악마의 씨, 엑소시스트, 오멘 등 헐리웃 영화가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전까지 주로 마이너한 독립영화들이 대부분이었던 공포 장르가 주류 문화에 자연스럽게 안착하게 되었다. 영미권을 사로잡은 세 영화의 공통점은 종교를 소재로 종말론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공유하는 문화권이 아니라면 오멘이 주는 공포를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다. 그냥 센스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코쟁이들이 링보다 텍사스 살인마를 더 무서워하는 한편 우리는 적그리스도보다 팔척귀신이 더 무서운 것이다. 오멘이 시사하는 것은 종말의 징조들이며(오멘이 징조라는 뜻이라고) 당시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돌아와 아이의 머리를 깎아 666표식이 없는지 뒤적거릴 정도로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정치권에서 자라난 악마가 공권력을 휘두르며 세상에 종말을 몰고오려 한다! 


서구권에 안티크라이스트가 있다면 한국에는 안티프레지던트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사악한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어 일부러 나라 꼴을 휘저어 놓는 것이다. 


으음. 누군지는 물론 노코멘트.


시간이 흘러 다른 고전과 마찬가지로 공포를 느끼기엔 수위가 낮은 영화. 그러나 그건 영화 잘못이 아니고 자극적인 영상에 시달리느라 불감증이 되어버린 현대의 관객들이 짊어진 슬픔이다. 공포 요소를 떼어놓고 봐도 악마 숭배자들의 음모를 파헤쳐가는 과정은 재밌다. 주인공의 멘탈 붕괴와 찝찌르르한 엔딩도 좋다. 주인공보다 오히려 데미안에게 더 이입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호러(데미안은 2편 중반까지 자기가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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